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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작성자 :  장은경 작성일 : 2013-01-07 조회수 : 1715



비눗방울

장 은 경

 

한여름의 태양을 파라솔로 피하며 해인사 큰 법당으로 가는 가파른 수직 돌계단을 오른다. 등줄기와 겨드랑이 사이로 땀방울들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여 이마와 콧잔등, 목덜미의 땀만 손수건으로 눌러 닦는다. 이번이 마지막 계단이라는 안도감과 큰 법당이 눈앞에 들어오는 장엄함에 한걸음 더 다가서려고 하자, 어느 중년 남성이 나를 가로막는다.

 

"안 바쁘시면 좀 있다가 큰 법당에 가셔도 되겠습니까? 사실은 오늘 KBS에서 3D로 해인사 촬영이 있어 잠시만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서야 그 남자의 목에 걸린 명찰이 눈에 들어온다.

'촬영감독'

 

몇 분이 흐르자, 저마다 사연 하나씩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 신기한 눈으로 촬영하는 스텝들을 바라본다. 그 때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쉴새없이 조잘대며 우리 쪽으로 온다.

"아저씨, 지금 무슨 촬영하세요?"

"이거 찍은 것 언제 방송 나가요?"

"우리도 나와요?"

촬영 감독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질문에 흔쾌히 답해 준다.

 

초등학생 무리는 지난 밤 템플스테이를 하고 왔는지 목걸이에는 각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 중 한 여자 아이는 몇 분의 기다림이 무료했던지, 자신의 목에 걸린 파란색 플라스틱 통을 만지작거리더니, 예쁜 비눗방울을 포도알처럼 계속 불어댄다. 투명하지만 그 방울 하나 하나가 속절없이 사그라들고 터져버리는 모습이 왠지 살아오면서 내가 꿈꿔 왔던 것들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여지없이 부서지는 모습 같아 외면하게 된다.

 

촬영하는 동안 한쪽에서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은 즐거운 눈으로 그 비눗방울이 날아올라 방울방울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감탄하는데,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재하고 있던 우울이 칡넝쿨처럼 타고 올라와, 온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 나가 서 있을 힘조차 없어진다. 내 옷에 비눗방울이 닿으면 또 하나의 꿈이 사라질까봐 나는 자꾸만 피하고 어디라도 숨고만 싶다.

"자, 여러분! 이제 기도하러 가셔도 됩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가 갈 길을 향해 떠났다. 나는 큰 법당 뒤로 가야산을 느릿느릿 넘어 가고 있는 흰 뭉게구름만 무심히 바라본다.

 

'나는 어디로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비도 많이 오고 밤에는 열대야로 깊이 잠들지 못했다. 퀭해진 내 모습이 마치 커다란 법당을 오르는 작고 힘없는 개미처럼 느껴진다. 신발을 벗고 삼배를 하고 나는 법당의 한 귀퉁이에 앉아 눈을 감는다. 결혼하고 18년의 세월이 머릿속에서 영사기의 필름처럼 촤르르 돌아간다.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의 도리와 의무로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얽혀 온 삶! 도시에서 아스팔트만 밟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내가 시골로 시집오면서 모든 것은 달라졌다. 비록 잘은 못하지만 시집와서 마음으로 몸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눈을 뜨고 열려진 샛문을 통해 우측으로 비스듬히 올려다보니, 가야산을 무심히 넘고 있는 흰 구름이 보인다. 시선을 좌측으로 돌려 커다란 부처님의 반쯤 뜬 눈과 마주치자,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얼마 전부터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원망과 서운함,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변명이나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다. 그냥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한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참고 또 참다 보면 모질고 뼈아픈 기억들이 희미해질 것이다. 그동안 주위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쌓였던 것들이 밟으면 연쇄적으로 터지는 지뢰처럼 매복하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그 하나를 건드리면 연쇄적으로 터진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목구멍으로 커다란 쇳덩이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가 하면서 숨조차 쉬기가 어렵다. 심장은 박자를 잊은 지 오래다. 마음대로 두근두근 뛰고 얼굴은 붉게 물들면서 열이 위로 솟구친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가라앉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등줄기와 가슴 사이로 흐르던 땀줄기가 식어 서늘해진다.

 

"매~~에~~맴, 매~~에~~맴, 매~~앰"

7년을 땅속에서 기다렸던 매미가 올여름 드디어 세상으로 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수컷 매미들의 외침은 해인사 경내를 휘돌아 울려 퍼지고 생명의 메아리가 되지만, 그 울음 뒤의 죽음을 알기에 내 가슴은 더욱 먹먹해져온다.

'만약 영혼이 있다면, 조상님들! 지금 저에게 이 시련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시오! 제가 평생 기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제발 도와주십시오!'

 

순간 그동안 내면에 잠자고 있던 서러움과 말 못하고 삭혀 두었던 것들이 꿈틀거리며 서서히 눈시울을 붉게 적셔온다. 참으려고 하면 할수록 꺼-이 꺼-이 뱃속에서 올라오는 울음이 멈추어지지를 않는다. 한동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가라앉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내를 다 드러낼 수 없어 답답하고 숨이 막혀 가슴을 쥐어뜯으며 일부러 큰 숨을 쉬어야만 그 다음에 숨을 쉴 수 있다.

 

아까 그 아이의 비눗방울이 떠오른다.

착하고 유능한 맏며느리!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 내조 잘하는 아내!

이런 평범한 꿈을 꾸며 삶을 가꾸고 키우고 꾸려 나왔는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잘된 것은 모두 자기들 공덕으로 돌리고, 못된 것은 다 내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기에 다시 새로운 기도를 한다.

'비록 금방 사그라들고 터져 버릴지라도 나를 바라보고 커가고 있는 두 아이를 위해, 세상이라는 비눗물에 나를 온전히 담그고 다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새로운 희망의 비눗방울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언젠가 오늘을 회상하며 그 때 나는 이러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하산한다. 끝나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을 뒤로 하고, 해인사 경내를 한걸음씩 디디고 즈려밟으며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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