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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평행선을 긋다.
작성자 :  장은경 작성일 : 2012-11-07 조회수 : 1760

사랑, 평행선을 긋다

 

장 은 경

 

로맨틱한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인들은 갖은 고생 끝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달콤한 키스를 나누며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내용도 마찬가지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미녀와 야수 등등에서 마침내 왕자님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끝을 맺는다.

그럼 그들은 정말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의문을 가져본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닐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적어도 그들이 사랑의 키스를 나눌 때의 열정만큼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미국 코넬 대학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연인 5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폭풍과도 같은 열정적인 감정의 지속 기간은 보통 900일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 '러브 칵테일'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 물질의 분비가 줄어들고, 900일 가량이 지나면 거의 분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열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을 대개 18~30개월로 보고 있다. 연애를 시작한 지 6개월~1년 전 후로 열정이 급속히 약해지고, 많은 연인들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 식었다기 보다는 열정이 사라진 것일 뿐이다. 설렘과 열정이 돈독함과 편안함으로 그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서로가 상대에게 안착하고 기대면서 때로는 서로의 사랑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거나 의구심마저 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권태기의 시작이다. 권태기가 오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만, 사랑이 변하는 것은 심정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것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사랑은 갈망, 끌림, 애착 3단계를 거치며, 그 단계마다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달라서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화학물질의 본질은 바로 호르몬이다. 사랑에 빠지면 페닐에틸아민, 노레피네프린, 엔돌핀 같은 화학물질이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마치 마약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의 화학물질은 점차 분비가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이는 마치 항생제를 많이 쓸수록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대뇌에 항체가 생겨 상대방을 봐도 더 이상 사랑의 물질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 불같은 사랑의 단계가 지난 후, 끈끈한 정으로 맺어지는 애착 단계가 되면 옥시토닌 같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닌은 피부를 자주 접촉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낭만적이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분비된다고 한다. 연인일 때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 지나고 나면 새로운 사람을 다시 만나면 그만이지만, 만약 결혼하고 자식도 있는 사람들이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문제는 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le Theory of Love)'을 살펴보면서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 결정 및 책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때 친밀감은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 그로 인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마음을 말한다. 친밀감이 있을 때 우리는 상대방과 함께 하는데서 오는 행복감을 느끼며 상대방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열정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낭만과 성적인 몰입, 욕망을 느낀다. 이는 서로 합쳐지고자 하는 강력한 갈망 상태로써 상대방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결심 및 책임의 상대는 상대방을 사랑하겠다는 결심, 그리고 사랑을 유지하고자 하는 책임감을 말한다.

스턴버그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여러 가지 사랑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즉 눈 먼 사랑, 얼빠진 사랑, 공허한 사랑, 낭만적 사랑, 동반자적 사랑, 완전한 사랑이 그것이다. 가령 '눈 먼 사랑'의 경우는 첫 눈에 반한 상태, 즉 열정만 있고 친밀감이나 책임감은 느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공허한 사랑'의 경우는 이미 친밀감과 열정은 사라지고 책임감만 남아 더 이상 애정을 느끼지 않는데, 그냥 가족처럼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의 이론대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한 사람에게 눈멀어서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얼빠져 있다가, 완전한 사랑을 꿈꾸고 그 채울 수 없는 공허함에 몸부림친다. 그저 동반자로 만족하며 사랑의 평행선을 그으며, 그 사랑이 완전해지기를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스턴버그가 내세운 사랑의 세 가지 요소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색되고 빛바래져서 우리 앞에 다가오는 순간, 이미 권태기는 깊숙이 삶 속에 파고 들어있다. 상대방에 대한 친밀함은 어느새 적대감으로 표출되고, 열정은 방관, 무시, 포기, 체념으로 한숨만 나오게 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나만이 무겁게 지고 헤쳐 나가는 것 같아 상대방에게 짜증, 분노, 슬픔, 무기력, 우울로 드러낸다.

사랑은 살아 숨 쉬는 동안 늘 우리를 힘들게 한다.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은 삼 년이라는 짧고 달콤한 시간으로 끝이 난다. 그 뒤에 삼십 년, 아니 육십 년은 현실적이고 책임감만 남은 공허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되돌아보면 사랑하고 있었던 그 순간이 우리의 감성과 이성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때라고 느낄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을 누르고 있던 우울의 실체를 마주한다. 바로 '공허한 사랑'이다. 지끈거리고 욱신거리는 편두통의 원인을 알아냈다. 어느 순간 가슴이 미어지듯이 아프고 목에 쇳덩이가 치밀어 오르고 심장이 마구 엇박자로 뛰었던 것이 가족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만 남아서였음을 깨닫는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열심히 살아 왔었는데 이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사랑이 식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그래서 지독하게 아프고 못 견디게 힘들었다는 것을.

결혼식장에서 면사포 쓰고 공주님처럼 비단길을 밟으며 시작한 그 길부터 부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란히 걸어 온 것이다. 중간 중간 간이역도 있었고, 어둡고 긴 터널도 있는 철로처럼 평행선을 그으며 펼쳐진 삶에서 앞만 보고 쭉 달려온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내 옆에는 그가 있었다. 어느 순간은 너무 진절머리 나서 멀리 떨어진 평행선이기를 원했고, 어느 순간은 다른 길로 갈 것을 하고 후회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었다.

이제는 멀어진 그 평행선에서 다시 가까워져야만 한다. 젊은 날 내 모든 것을 그에게 아낌없이 주리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출발점을 떠올리며, 다가올 도착점을 향해 고민하고 반성하는 '자성의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그 방법으로 수필쓰기가 제격인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허한 사랑과 권태기가 우울의 늪을 갈수록 넓혀 나가게 나를 내버려 두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수필 쓰기를 통해 나의 아픈 기억과 상처들을 꺼내어 볼 수 있었고, 치유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었다. 열정적인 사랑이 사라지고 가족에 대한 헌신적이고 책임감만 남은 사랑일지라도 좋다. 천천히 주위도 돌아보고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고 못 오면 기다려주면 된다. 나와 그가 다르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단점이나 약점만 바라보지 말고 좋은 점을 찾아 크게 보려고 하자. 그가 내게 오래 전처럼 베풀어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거나 서운해 하지 말고,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상대방에게 건네고 베풀면 어떨까? 그를 위해서 라기 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조금씩 노력해 보자.

'은영아, 힘내! 누구나 살면서 사랑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지금까지 달려온 것 처럼 시선은 저 멀리에 두고, 한 걸음씩 용기를 내어 그와 함께 손잡고 걸어가면 되는 거야. 붉은 노을이 지는 저 수평선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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