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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문학관을 다녀와서
작성자 :  장은경 작성일 : 2012-10-25 조회수 : 1434

정지용 문학관을 다녀와서

장 은 경

 

시월이 오기를 무척이나 애타게 기다렸다. 수필고을 회원님과 평소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고, 문학 기행을 떠난다고 하니 꼭 가고 싶었다. 한 달에 단 하루 월차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시월에는 집안 행사, 어른 생신 등등 대소사가 줄지어 있었지만, 이 날을 위해 모든 일정을 조정하고 몸으로 부딪친다. 서부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문학기행에 수필고을과 시창작반, 주부독서회 회원들과 수필가 장 호병님, 시인 김 동원님, 도서관의 과장님, 계장님이 함께 하여 모두 38분이 참석하신 뜻 깊은 하루였다.

아침 9시에 서부 도서관 1층 갤러리에 모여 개인 이름표를 받고 옥천으로 향하는 대형버스에 올랐다. 다들 약속시간에 맞춰 오시느라 새벽부터 얼마나 종종 걸음이었을지 눈에 선하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도 하고 따뜻한 커피와 과자들을 건넨다. 마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그들과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같이 여행하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다. 차는 9시 10분에 서서히 출발하고 도서관 관장님을 대신하여 과장님께서 오늘 하루 무사히 여행을 다녀오자는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창밖으로 완연한 가을 날씨가 미끌어지듯이 눈앞을 스쳐 지난다.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로 황금 들판이 누렇게 펼쳐지고 이른 곳은 추수가 끝나 짚단이 묶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마을의 감나무에는 주황색 감이 따가운 가을 햇살에 당도를 높여 가고, 까치는 남겨진 까치밥을 먹으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여행 떠나기에 안성맞춤이다.

소개말과 인사가 끝나고 장 교수님의 <정지용 시인의 생애와 문학> 강연이 시작된다.

"여러분, 고향은 언제 가면 가장 좋을까요?"

“··· ···.”

"네-에, 고향은 평소에 가면 작고 초라하고 별로이지만, 죽어서 가는 고향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늘 가는 정지용 문학관 앞에 흐르는 실개천도 실제로 가보면 실망합니다."

"하하하, 호호호."

교수님의 유머 속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지용은 충북 옥천읍에서 1902년 6월 20일에 태어나 어린 시절 빈곤과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힘든 그의 현실과는 달리 아름다운 꿈과 문학적으로 성숙한 내면세계를 동경하였다.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여, 김영랑과 함께 순수 서정시의 개척에 힘을 썼다. 김영랑이 잘 다듬은 언어를 사용하고 시의 음악성을 고조시킨데 비해, 정지용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표현방법을 개척하였다고 평하고 있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간결하며 정확한 시어를 구사하여 정지용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창조한다. 이점에서 그는 한국 순수시의 초석을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1939년부터 <문장> 지에 시 부문 책임편집을 맡았고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 두진, 박 목월, 조 지훈 등 많은 시인들을 문단에 배출한다. 해방 이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6.25 전쟁을 전후하여 납북되어 애석하게도 현재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한때 월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문학사에 다루어 지지 않았으나 1988년 해금된다. 유명한 그의 시 <향수>는 1927년 <조선지광> 65호에 발표되었다. 1930년대 작곡가 채 동선에 의해 처음 작곡 되었다. 1950년 시인의 납북과 관련되어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1988년 해금되면서 두 번째로 변 훈에 의해 가곡으로 작곡된다. 세 번째 곡은 김 희갑에 의해 가요 곡으로 만들어졌는데,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89년 호암 아트홀에서 듀엣으로 열창하며, 단번에 국민들의 영혼을 사로잡았고 지금도 즐겨 불러지고 있다.

장 교수님의 유익하고 즐거운 문학 강연이 끝날 무렵, 시계는 어느덧 10시 6분을 가리키고 있고 우리는 김천시를 지나고 있다. 차는 십여 분을 더 달려 추풍령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추풍령 휴게소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가을을 만끽한다. 길가에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나무와 갈대가 살랑거리며 우리를 반긴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정도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순간 일분일초가 아쉽기만 하다.

다시 차는 옥천을 향해 출발한다. 가는 동안 서로 얼굴과 이름도 알고 인사도 하라고 2분 스피치 시간이 주어진다. 자기 차례가 되면 앞에 나가서 인사를 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한다. 어떤 분은 그냥 간단하게 이름만 말하고 들어가서 아쉬웠고, 어떤 분은 사투리를 섞어가며 구수하게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 나가셔서 박수도 많이 받는다. 38분 개개인의 개성 넘치는 인사를 듣다 보니, 정겹고 아담한 옥천 정지용 문학관에 도착하게 된다. 마을 곳곳에 간판도 예사롭지가 않다. 시인의 마을임을 한 눈에 보여주는 간판이 신기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에 나오는 실개천은 정말 작고 초라하며 공사 중이라서, 교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문학관에서 이십여 분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 자료를 보고, 듣고, 음미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문화해설을 시작하시는 분이 잔뜩 긴장한 채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주셔서 인상적이었다. 향수를 지은 시인 정지용으로만 알고 있었던 무지함을 일깨우는 시간이다. 문학관과 생가를 돌아보고 단체로 기념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점심은 마당 깊은 집이라는 한정식 집에 미리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고택을 개조한 마루와 방에 나눠 앉아 맛있게 비빔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다시 차에 올라 육 영수 생가에 도착하니 시계는 한시를 조금 넘었다. 삼정승들이 살던 집을 광산업 하시던 육 영수 여사의 부친이 매입하여 살다가 그녀를 이집에서 낳았다고 한다. 조선후기 99칸 전통 가옥으로 1999년 옥천군과 후손 등에 의해 완전히 철거됐다가, 군이 생가 터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복원하게 되었다. 안채, 사랑채, 중문 채, 곳간 채, 사당, 연못 터 등이 설치되어 있다. 육 영수 생가 터를 돌아보며 나는 잠시 어릴 적으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내방 책꽂이에 '육 영수 여사' 전기가 있어서 어렵고 두꺼운 책이었지만, 여러 번 읽은 기억이 나서 더 애착이 간다. 박 목월 시인이 육 영수 여사 돌아가시고 그녀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기리는 이 책을 감동 깊게 읽었기에 생가는 내게 좀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생전의 그녀 모습이 마당 한 켠에 사진으로 전시되어져 있다. 친필시도 있고 박 정희 대통령과 함께 한 사진 속의 단아한 한복 차림의 그녀는 마치 살아생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천 죽향 초등학교에 들러 그녀가 재직했던 근대식 교실과 추억 속의 물건, 교복, 풍금 등을 돌아본다. 우리 기억 속의 70년대 물건들을 하나씩 대하면서 아련하고 애잔한 향수에 젖어든다.

이제 마지막 일정인 <멋진 신세계>를 향해 차는 '향수 30리길'을 달린다. 20년생 벚나무 가로수가 2000여 그루 펼쳐지는 37번 국도를 달리면 장계관광지의 멋진 신세계 시비공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시인의 시작품과 금강을 주제로 건축가, 디자이너, 아티스트, 문학인 등 100여명이 참여하여 2년여의 시간을 함께 한 결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시비들을 읽으며 강가를 호젓하게 걸으니 저절로 시인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 편의 시로 남길 수 있는지 정말 존경스럽다.

대구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시인 김 동원님의 문학 강연이 시작된다. 처음 보는 시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가고 마음 한 켠이 아련하다. 문장지에 실린 그의 시 <보름달>의 시어처럼 자늑자늑한 목소리로 정지용 시인을 일러주신다. 나는 그의 시를 낭독한 공으로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책 앞에는 <우주는 시다. 김 동원 올림. 가을>이라는 친필 사인도 적혀 있다. 요즘 그 책을 학교 책상 한 켠에 두고 틈틈이 읽으며 문학 기행을 다녀온 그 날을 자주 회상하곤 한다.

우주 속에 작은 것 하나에도 귀 기울여 듣고, 보고, 느끼고 그것을 글로 쓰고 마음으로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문학기행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작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되돌아보고 재조명해봄으로써, 문학적 기운에 힘입어 우리도 조금씩 문학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에 내게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하루였다. 미흡하지만 그 분들의 문학세계를 본받고 싶고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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