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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
작성자 :  장은경 작성일 : 2012-09-27 조회수 : 1229

엄살

장 은 경

추석 전날이라 마음은 바쁘다. 한 집안의 맏며느리라서 해야 할 일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아침부터 서둘러 집안일을 마치고 시댁으로 향한다. 점심상을 차리고 냉장고와 부엌정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 부칠 재료들을 다듬고 씻는다.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 두 개를 나란히 놓는다. 하나로 하면 시간도 더디고 허리도 아플 것 같아 몇 년 전부터 두 개의 프라이팬을 사용한다. 하나는 밀가루 옷을 방금 입힌 전을 올리고, 다른 하나는 뒤집어 노릇노릇 익히는 용도로 사용한다. 감자전, 고구마전, 우엉전, 연근전, 쥐포전, 조개전을 차례로 구워 넓은 쟁반에 식혀서 나란히 보기 좋게 줄을 세운다.

비록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추석 차례 두 군데를 지내고 시댁에는 저녁에 모두 모이기에 전과 어물, 나물, 탕국을 넉넉하게 준비해 두어야 한다. 차례 음식에 질릴 것 같아서 다른 집에서 잘 하지 않는 전으로 개발한 것이 조개전이다. 조개를 깨끗이 씻어 잘게 다진 뒤에 붉은 고추, 파란 고추, 당근, 계란, 밀가루, 소금 약간을 넣고 섞은 뒤 동그랗게 부쳐 주면 밥반찬으로도 그만이고 술안주로도 인기 만점이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추석에 먹을 음식들이 하나둘 완성된다.

부엌문 밖으로 들려오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정겹다. 아직 후덥지근한 여름의 열기는 남아 있지만 그래도 가을이 오는 것을 느낀다. 아직 저녁을 먹기는 좀 이른 시간이라 모두 모여 TV를 보며 과일을 먹고 있다. 아랫목에는 뜨거운 전기장판에 고추를 말리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올라오신 아버님이 아랫목이 더워 차가운 윗목에 모로 누워 계신다. 예전에는 커다랗고 태산처럼 보이는 등이었는데, 오늘 따라 모로 누우신 아버님의 등이 왜 이리도 작고 연약하게 느껴지는 걸까?

"아버님, 거기 누워 계시면 차가워서 감기 드실 텐데, 아랫목으로 오시죠?"

"아니다. 거기는 뜨거워서 싫다."

"그럼 고추 말리는 것 치우고 전기장판 끄면 됩니다."

"아-아! 요즘 자꾸 오른쪽 팔위에가 아프다!"

"손님 없을 때 쉬면 될 텐데, 당신이 용쓰고 망치 들고 못질을 많이 해서 그렇잖아요."

어머니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아버님을 쳐다보신다.

"으-으-으, 정말 아프다니까."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엄살을 부리듯이 아버님의 눈빛은 애절하다. 그래도 아무도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의 엄살이 엄살로만 느껴지지를 않는다.

평생을 하루같이 한약방에 앉아 손님 기다리시고 약 지어시고, 심심하면 마당에 나와 화초도 돌보시고, 낡은 집에 수리할 곳은 없나 이리저리 살피시다가 못질도 하고 청소도 하신다. 그리고 집안이나 문중의 대소사도 빠짐없이 챙기고 보살펴 오셨다.

어찌 팔만 아프실까? 팔순이 다 되어 가는 노인인데도 그 열정과 부지런함은 집안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지런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이 집안을 이끌어 오신 분이신데, 작년부터는 눈에 띄게 많이 쇠약해지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흰 머리카락 한 올도 없이 정정하셨는데, 이제는 숱도 많이 줄고 반백이시다. 체구는 작지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따르게 한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자주 아프다고 한다.

"아버님, 이제 안 뜨거우니 여기 누워 보세요."

"어-어, 그래."

아버님을 미지근해진 전기장판에 눕게 하고, 천천히 경추와 요추를 하나씩 눌러 내려간다. 팔이 아프다고 하시지만 우리 몸은 하나가 고장 나면 그 근본적인 진원지부터 만져 주어야 한다. 경추를 지나 어깨를 지긋이 여러 차례 누르고, 뭉쳐진 어깨가 풀리자 아프다는 팔로 내려간다. 나의 양손은 대칭으로 안마를 한다.

"아픈 데는 오른쪽 뒷부분이야, 으-윽 거기!"

"아버님, 좀 아파도 가만히 계세요."

"으-으, 으-으, 으-으."

그는 나즈막히 신음소리를 낸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픈 곳을 눌러 나간다. 잘은 모르지만 많이 아파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픈 곳도 잘 아는 법이다. 나도 오른쪽 어깨 중간의 그 부분이 자주 아프기에 꼭꼭 눌러 내려간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그의 신음소리도 잦아든다.

"아버님, 이제 일어나서 앉아 보세요."

"으-응, 오늘 네가 주물러줘서 그래도 많이 풀렸다. 다른 사람들은 아프다고 해도 주물러 주지도 않아."

라고 너스레를 떠시며 천천히 일어나 가부좌로 앉으신다.

아! 예전에는 두꺼운 어깨와 단단한 살들이 있었는데, 이제 앙상한 근육과 뼈가 만져진다. 한 해 한 해 수척해지시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작고 앙상해진 어깨와 팔, 다리로 온 식구들을 다 보살피고 이끌어 오셨나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져 온다. 약방에 손님이 오셨다는 말에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나서 나가신다.

그동안 아버지라는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식들이 너무 오래 안주하고 편안하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버님, 건강하세요. 그리고 오래 오래 사셔서 손자들 대학 들어가고, 장가도 가고 잘 사는 것도 보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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