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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Odisay)
작성자 :  장은경 작성일 : 2019-11-15 조회수 : 320

눈부신 오월의 햇살을 받아 자라난 초록색 오디가, 유월이면 새까맣게 잘 익어 주인의 손길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농장이 산속(해발 400미터)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평지 오디 출하가 끝날 즈음, 본격적으로 수확을 시작한다. 매년 67일부터 627일까지 새콤달콤한 오디를 수확할 수 있다. , 고라니, 멧돼지, 뻐꾸기, 너구리 등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무 농약으로 키운 뽕나무는 거의 야생 뽕나무에 가깝다. 총 만 오천 그루 중 그동안 죽거나 밀식된 나무를 베어 내고, 지금은 청일, 익수, 과상 등 재래종과 개량종 뽕나무가 만여 그루 자라고 있다.

 

가녀린 뽕나무를 심고 가꾸던 어느 날, 농장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남편이 내게 고민 좀 해보라고 한다. 농장을 대표할 이름이라 한 달을 고심하다가, 지은 이름들 중에 오디를 이야기하다는 뜻으로 오디세이(Odisay)를 만장일치로 정한다. 이름에 걸맞게 오디와 가족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며, 귀농에 대한 인생 2막의 꿈과 희망, 끊임없는 도전이 시작된다.

 

결혼하고 1998년부터 서서히 김천 고향땅을 매입하고, 돌을 줍고 밭을 만들고 논으로 다듬어 농사를 짓는다. 2008년 고령과 김천을 오가며 농사를 짓다보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농사 대신 나무를 심고자 알아보다가, 과실수 중에 뽕나무를 식재하게 된다. 뽕나무는 한약재로도 쓰이며 뿌리, 줄기, , 열매를 모두 사용할 수 있어 매력 만점이다. 다른 과실수는 보통 3~5년 지나야 첫 수확을 할 수 있는데, 뽕나무는 가을에 심고 이듬해에 바로 수확할 수 있어서, 초보 농부 눈에는 안성맞춤이다.

 

자연친화적인 뽕밭에 들어가면 새가슴인지라 난 늘 두렵고 무섭다. 핸드폰 노래를 최대한 크게 틀고, 장화를 신고 토시를 끼고 긴 옷과 일모자로 중무장을 한다. 예초기가 닿지 않은 나무 아래는 뱀, 도마뱀, 개구리, 두꺼비, 이름 모를 벌레 등이 있어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오디 열매를 따다가 보면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자연스럽게 옮겨 다니다보면 수확의 기쁨에 온갖 무서움을 이겨낸다. 비가 오지 않는 한, 이른 새벽부터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해질녘까지 쉼 없이 오디 수확을 해야만 한다. 길어야 20일 정도 딸 수 있는데, 부지런히 수확하지 않으면 내년을 기약해야만 하므로, 막판에는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고 만다.

 

요즘 농사는 인건비와의 싸움이다. 농장일은 처음 5년은 필리핀 형제에게 맡기고, 그다음 5년은 비싼 인건비 주고 동네 어르신들께 맡긴다. 마이너스 대출은 자꾸만 쌓이는데, 농장을 일구려면 투자는 계속 해야 하고, 농가소득은 쥐꼬리 만큼이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동네 어르신들도 팔십이 가까워져 본인 몸도 힘드시다 하시고, 남편 혼자 고군분투하느라 농장은 거의 파산 직전이니 정말이지 대략난감이다.

 

두 아들 대학 보내고 5년 뒤에 귀농하겠다고 한 약속이 떠오른다. 5년이 길다고 생각하고 한 약속이었는데, 이리도 빨리 올 줄이야. 사회복지기관에서 타인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가족의 진정한 복지를 위해 내가 나서야 할 때다.

 

장 선생님, 그동안 맡으신 일을 누구보다 잘 해오셨는데 갑자기 사직서라니요? 하시던 일 그만 두시지 말고 일주일에 사흘은 농장 일하시고, 사흘은 기관에서 일하시면 안 될까요?”

원장님 말씀은 고맙지만, 저희 농장 사정이 힘들어져 어쩔 수 없이 제가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기관의 사회복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가족의 사회복지가 안 되서 이제는 사직하고 유월부터 오디 딸 인력이 없어서 귀농하려 합니다. 그러니 제발 말리지 마세요. 제 성격에 한 곳에 집중해야 되지, 여기 반 저기 반하면 집중하지 못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지도 못합니다.”

 

아쉽지만 직장에 사표를 내고, 2015년 유월부터 내가 직접 오디를 따고 전지를 하고, 남편은 식품을 가공하고 판매한다. 6차 산업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필요한 기본교육, 강소농교육, 블로그교육, 마케팅교육을 농업기술센터에서 부부가 같이 듣는다. 농사는 처음이라 실패의 경험들을 발판으로, 내년에는 좀 더 나은 선택과 안목을 가지고 재도전을 한다. 도시에서는 자격증이나 경력으로 취업할 수 있는 유능함이 있었는데, 농장에 들어오고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하늘만 쳐다보니, 내가 너무 무능하고 한심스럽기만 하다.

 

이제 일꾼은 가족뿐이니 체험 손님들을 유치하고 농장홍보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 박람회, 농산물 장터 등에 참여하면 오디가공품 판매는 뒷전이고, 내년 유월에 우리 농장에 오디 따러 오시라고 홍보에만 매달린다. 처음에는 오디 체험비를 받았으나, 이제는 먼 산골까지 와서 체험하시는 고객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체험비는 받지 않는다. 그날 수확한 총량의 반은 농장주에게 주고, 반은 체험 손님들이 가져가는 반반나누기 체험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이 행사를 진행하고 보니 일석오조이상의 효과가 생긴다. 비싼 인건비 안 들이고, 일꾼 주려고 식사 및 새참 준비할 필요 없고, 손님들이 바로 가져가신다고 생각하니 자발적으로 씨알 굵고 당도 높은 오디를 수확하고, 여럿이 함께 산속에서 일하니 무섭지도 않고, 서로 사는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며 뽕밭에서 즐거운 추억과 건강한 생활을 공유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우리 가족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귀농 후 첫 겨울은 고정 수입이 없어서 석 달 동안 매일 밤을 숨죽여 울면서 고심한다. 산속의 영하 15도 찬 냉기보다, 산골에서는 아무 것도 잘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더 마음속을 시리게 파고들어 얼어붙게 만든다. 복잡하게 얽힌 내면과 두려움의 밑바닥을 직면하고 직시하면서 차근차근 딛고 일어서고자 한다.

 

가족이 서로 모자람을 채워주고 거들어 주고 각자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응원과 격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농장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생각과 일 하는 방식이 달라서, 목소리가 올라가고 감정이 격해진다. 이럴 때는 격리가 가장 좋다. 되돌아보면 농사에는 정답이나 정도가 없다. 다만 그 일에 대한 능률의 차이고 비용의 차이가 있다. 그저 옳은 생각만 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몸으로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꾸준히 인내력을 가지고 해나가야만 소중한 결과물이 얻어진다.

 

2016년 늦가을, 경운대 한방바이오학과 졸업생들이 전통경옥고를 이 교수님 댁에서 직접 체험실습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지금까지는 소량으로 두 번 정도 경옥고를 만들어 겨울에 한시적으로 판매하였다. 경옥고를 식품으로 허가를 내고, 다른 사람들과 체험실습을 하고, 대량으로 판매한 경험이 없어 자꾸만 망설여진다. 그래도 가장 자신 있고 해 볼만 한 일이기에 조심스럽지만 용기를 내어본다. 우리가 지난 삼십년 동안 약방 일을 거들며, 보고 배우고 익힌 경옥고 기술에 가족의 미래를 걸고, 수많은 장애물과 난관들을 하나씩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아간다. 해마다 실습을 진행하며 위생적인 면들, 개선해야할 제도적, 법적 문제들, 포장디자인 및 포장재, 택배 배송 등을 고려하고, 여건이 되는대로 하나씩 개선해 나가며 노하우가 쌓여가고 있다.

 

경옥고는 인삼, 복령, 생지황, 꿀 네 가지 약재를 다듬고, 씻고, 말리고, 갈아서 동의보감에서 제시한 황금비율로 골고루 섞어, 구리 솥에 항아리를 띄워 사흘 동안 고온에서 중탕을 한다. 나흘째 날은 하루 쉬며, 나쁜 기운은 날리고 좋은 기운만 남긴다. 다섯째 날 하루를 더 고아 완성한다. 식품으로 경옥고 명칭을 쓸 수 없어 착안한 것이, 일주일이면 용기 소독하고 포장까지 완료되어 칠일고라고 이름 짓는다. 경옥고에 맥문동, 구기자가 더 들어간 제품은 먹으면 힘이 생긴다는 의미로 힘내고라 칭한다. 오디 작물을 넣어 제품명을 만들면서, 오디 원액은 <‘늘을 자인하다>로 탄생한다. 가공품은 3초 안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마케팅 실패다. 상품명은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떠올리기 좋은 5글자 이내면 적합하다.

 

식품가공에 대한 이해와 마케팅 전반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해서, 2017년에는 군위농민사관학교에서 관련교육을 1년간 통학하며 수료한다. 2018년에는 경북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의 식품 반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료한다. 이제는 농부의 길이 단순한 막노동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시대의 변화에 걸 맞는 꾸준한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농부들이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고 만든 가공품들과 소비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마케팅 노하우들을 공유한다. 더불어 각 농가를 방문하여 서로 격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자기 농장 소개 및 사업계획을 PPT로 만들어 발표하는 날이다. 강의실에서 교수님들의 강의만 듣다가, 발표를 위해 강단에 서니 농부로서 지나간 세월들이 떠오른다. 10분 내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오디세이가 걸어온 길을 자세히 설명하다 보니 30분이 쏜살같이 흐른다. 그래도 학우들은 끝까지 잘 들어주고, 심도 있는 질문과 함께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2019725, 바쁜 농사일을 제쳐두고 경북 곳곳에서 최고경영자과정 동기들이 김천시 지례면에 위치한 오디세이 농장을 방문한다. ㄱ자 한옥의 정자에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 찐 감자를 먹고 경옥고를 마시며, 오디세이가 걸어온 길을 같이 되돌아본다. 정자 맞은편 산봉우리에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흰 구름 한 조각이 유유히 흘러간다.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간다. 지나온 10년은 오디세이 농장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밑거름을 만들었고, 앞으로 10년은 주변 지인들과 건강한 생활을 지향하는 고객들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치유 농장으로 오디세이가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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